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극우사관 (문단 편집) ==== 발발 원인 ==== >"일본이 건설한 황인종 중심의 [[대동아공영권]]을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힌 [[귀축영미]](鬼畜英米)가 백인우월주의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파괴하였다."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침략과 야욕을 감추기 위해 [[대동아공영권]]이라는 허구를 내세우고, 인종 간의 대결로 치환한다. 태평양 전쟁 발발 이전에 이미 발발한 [[중일전쟁]]은 슬그머니 무마한다. 더불어 일본은 당시 [[대동아공영권]]을 같이 이룩하자면서 자신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했을 중국인들을 이미 무참히 학살했다. >"미국이 일본을 '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'으로 몰고 간 것은 [[헐 노트]]가 증명한다." 일본 극우들은 하나의 글을 쓰면서 위의 "귀축영미에 대항하는 대동아 공영권의 건설"과 "[[ABCD 포위망]]과 헐 노트로 개전에 끌려들어간 불쌍한 일본"이라는 명분을 주장한다.[* 다만 두 관점이 상호 모순적이라는 지적은 다소 어폐가 있다. 일본 극우의 관점에서 대동아공영권은 아시아를 "계몽"하기 위해 일으킨 정당한 전쟁이었고, 태평양 전쟁은 그런 일본을 시기한 서구 열강들이 "도발"해서 끌려들어간 전쟁이다. 저게 둘 다 틀렸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, 어쨌든 어지간한 극우들도 당시 일본이 한국이나 중국에서 선빵을 날렸다는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하진 않는다. 거기에 괴상한 정당화 논리를 덧붙여서 문제이다.] 대표적으로 자위대에서 짤린 우익 인사 [[다모가미 도시오]]가 '자칭 논문'이라고 주장하는 글에서 이런 성향을 드러냈다. 이들은 [[헐 노트]]를 근거로 [[진주만 공습]]은 미국이 유도한 것이며, [[태평양 전쟁]]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인 일이라고 정당화한다. 그러나 당시 [[미국]]은 [[일본 제국]]을 가상적국으로 상정하고는 있었지만 당장 전면전에 뛰어들 생각은 없었다.[* 당시 미국은 [[일본 제국]]보다 [[나치 독일]]을 더 큰 위협으로 여겼고, 설령 [[헐 노트]]가 일본 제국에 의해 거부되었더라도 그것만으로 바로 선전포고할 생각이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. [[일본 제국]]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정도만 건드리고 [[필리핀]], [[호주]] 등 전통적인 미국의 영향권을 존중했다면, 미국도 일단 유럽에서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는 중국을 지원하고 금수조치는 유지해도 전면전은 회피하며 적대적 평화를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았다. 애초에 [[1941년]]의 미국은 전쟁 준비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.] 그런 미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인 것은 [[선전포고]]도 없이 이뤄진 [[일본 제국]]의 기습 공격이었으며, 일제의 대미 선전포고문은 개전 몇 시간 뒤에야 전달되었던데다 필요한 법적 문구도 빠져 있었다. 게다가 저 "생존"이라는 것도 뜯어보면 이율배반적인 이야기인 것이, 미국의 석유 금수조치는 일제의 팽창주의와 전쟁 야욕을 견제하기 위함이었지 가만히 있는데 괴롭힌 것이 아니었다. 일본이 자국과 자국민의 생존을 운운하며 침략전쟁을 계속하겠다는 논리를 묵인한다면, 그 시기 침략당하고 있던 타 아시아인들에 대한 기만이다. 심지어 도의적인 비판을 배제하고 [[정치현실주의]]적으로 보더라도, 저 전쟁들은 [[일본 제국]]의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았다. [[1930년대]] 일본 제국은 이미 [[한반도]], [[대만]]을 강점하고 괴뢰국인 [[만주국]]을 설립한 상태였으며, 중국 대륙은 산업적으로 뒤떨어진 채 분열되어 있었다. 당대 동북아에서 일제는 주변국을 잡아먹어서라도 몸집을 불려야 했던 19세기 말의 약소국이 아니라 이미 지역 패권을 거머쥔 열강이었고, 후일의 전쟁에서 드러났듯 육지와 바다에서 한 체급 위의 강대국들과 맞서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. 또한 1930년대 기준 일본의 경제는 규모 면에선 다른 열강들보다 작았지만 [[나치 독일]]처럼 전쟁경제에 올인한 상황도 아니었고, 침략전쟁보다는 평화적인 무역을 통해 더 발전할 여지가 남아 있었다. 즉, 당대 일제는 현상유지만 해도 열강으로서의 독자적인 생존에 전혀 지장이 없었으며, 오히려 세력 균형을 깨트림으로써 강대국들의 분노를 산 결과 패망과 제국의 해체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. 이는 순전히 군부의 폭주를 막지 못한 일본 제국 정치의 실패일 뿐, 다른 나라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